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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중 잔혹사
조선 궁중 잔혹사
조선 궁중 잔혹사
Ebook246 pages5 hours

조선 궁중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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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소현세자의 아내 강빈과 조선최고의 팜므파탈 소용 조씨의 처절한 전쟁! 새로운 조선을
꿈꾼 소현세자, 미모와 지성을 모두 겸비한 세자빈 강씨, 치명적 아름다움을 지닌 악녀 소용 조씨, 시대가 만든 비운의 군주 인조. 이들이 서로 얽히면서 궁중 속 여인들의 목숨을 건 잔혹한 전쟁이 시작된다!
\"지·면·죽·는·다\" 과연 그 전쟁의 끝은……?!

Language한국어
Publisher자유시간
Release dateNov 26, 2016
ISBN9791195884506
조선 궁중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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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궁중 잔혹사 - 김 이리

    조선 궁중 잔혹사

    김이리 장편소설

    조선 궁중 잔혹사

    ePub전자책 펴냄_ 2016년 11월 21일

    지은이_ 김이리

    펴낸곳_ 자유시간

    펴낸이_ 이용준

    등록_ 2016년 8월 1일 제480호

    주소_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길 48 산학관 1층 창업센터

    이메일_ freetime6772@daum.net

    전화_ 033-241-1119

    팩스_ 0504-062-1061

    ISBN_ 979-11-958845-0-6 (05810)

    이 책은 자유시간이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따라 전자책으로 발행한 것입니다. 본사의 허락 없이 본서의 내용을 무단복제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습니다.

    Copyright ⓒ 2016 by JAYUSIGAN publishing Company. All rights reserved.

    김이리

    저자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주부생활’ 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하였다. 창작동화집 <반장 선거>, <꼬마 철학자> 등을 썼다.

    새로운 조선을 꿈꾸다

    살다 보면 예삿일인데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코에 익은 향기인데도 새삼 상큼하게 느끼고 꽃이 어디에 피었나 둘레둘레 살필 때도 있다. 한 줌 햇살이 새삼 따사로울 때도 있다. 몸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왜 이렇게 애틋하게 부는지 스스로 물어볼 때도 있다. 봄날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보면서 어떤 이의 안타까운 눈물을 연상하기도 한다.

    나는 1월의 청량한 공기가 좋아 산책을 나섰다. 불광천을 끼고 걷는데 잔잔한 듯 안타까운 기운이 도는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얼굴이 되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뒤돌아보았다. 몇몇 사람 그리고 애완견 몰티즈 한 마리.

    누굴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고, 그 얼굴을 떠올렸다. 눈에 눈물이 가득한 얼굴. 그래, 강빈, 소현세자의 아내 강빈의 얼굴이다.

    소현세자 내외는 청나라에서 팔 년간 볼모로 지냈다. 그러나 모든 수모를 이겨내고 청나라 왕후장상들과 외교를 하여 청나라가 조선을 다시 침략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또한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흥성하는 과정을 심양과 북경에서 직접 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세자 내외는 청나라와 신성 로마 제국의 제도와 문물을 배우고 익히고, 이것을 조선에 적용하는 꿈을 꾸었다. 강빈은 교역도 하고 대농장도 경영하며 큰 재물을 모았고, 세자는 이 재물로 청나라 왕후장상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강빈은 잘 사는 조선, 강한 조선을 꿈꾸었다.

    소현세자 내외는 팔 년만에 귀국했다. 강빈이 보는 앞에서, 인조가 보낸 의원이 세자에게 침을 놓았고, 침을 뽑자 세자가 죽었다. 귀국한 지 두 달 만이다. 이어서 인조는 강빈의 두 오라비를 죽였다. 임금이 아들 딸 여섯도 죽일 게 뻔한데…… 사약을 받은 강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인조는 소현세자의 목숨과 꿈도, 그리고 강빈의 목숨과 혜안도 땅속에 묻었다. 그러나 기록이 남아 있으면 사실은 찾는 이의 눈에 띄게 마련이다. 나는 《조선왕조실록》과 《한국 역대 궁중 비사》 등을 뒤져 민회빈강씨에 관한 자료를 찾았다. 새로운 자료를 볼 때마다 강빈의 행적을 하나씩 더 알았고, 그 혜안과 열정에 탄복했다. 소현세자 내외는 1636-45년에 새 세상을 보았고,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개화당이 새로운 조선을 꿈꾸며 갑오개혁을 일으키기 250년 전이었다.

    이 꼬마 훈장이 뉘 댁 따님이신가

    "부생아신 하시고

    모국오신 하셨네."

    인왕산 아래 어디선가 아이들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복이회아 하시고

    유이포아 하시며"

    동네 훈장이 지나가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소리는 동네에서 뒷산으로 가는 길목 언덕에서 났다. 앳된 목소리지만 가락도 제법 맞는다. 하나가 선창하면 여럿이 따라 읊고 있다. 훈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허허, 소학(小學)이로구나! 기특하구나! 어떤 아이들이기에?

    훈장은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의온아 하시고

    이식포아 하시니

    은고여천이네.

    위인자자

    갈불위효리오."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멍석 몇 장 깔아놓고 서당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낭랑하게 선창했다. 예닐곱 살이 되었을까. 여자아이는 높은 자리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며 가락을 맞추었다. 훈장은 그 모습이 귀여웠다. 훈장은 짐짓 헛기침했다.

    에헴, 에헴!

    아이들은 기침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선창하던 여자아이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다른 아이들은 그보다 위 또래로 보였다. 훈장은 선창하던 아이에게 물었다.

    무엇을 외웠느냐?

    네, 소학이옵니다.

    뜻을 새길 수 있느냐?

    네.

    새겨 보겠느냐?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또랑또랑 읊었다.

    "부생아신(父生我身)하시고

    모국오신(母鞠吾身)하셨네.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네.

    복이회아(腹以懷我)하시고

    유이포아(乳以哺我)하시며,

    배로써 나를 품어주시고

    젖으로써 나를 먹여 주시며,

    이의온아(以衣溫我)하시고

    이식포아(以食飽我)하시니

    은고여천(恩高如天)이네.

    위인자자(爲人子者)

    갈불위효(曷不爲孝)리오.

    옷으로 나를 따뜻하게 하시고

    밥으로 나를 배부르게 하시니

    은혜가 하늘같이 높네.

    사람의 자식 된 자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

    여자아이를 따라서 읊조리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아이도 있었고, 손뼉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음, 네가 바로 그 꼬마 훈장이로구나. 올해 나이가 몇이냐?

    일곱 살이옵니다.

    여자아이는 제 또래를 비롯하여 많게는 서너 살 위인 아이들을 모아놓고 소학을 가르쳤다.

    아버님 함자가 어떻게 되시느냐?

    성은 강이시고, 석 자 기 자 쓰십니다. 소녀는 둘째 딸입니다.

    훈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뇌었다.

    그럼 그렇지! 병조참의 강 영감, 강감찬 장군 댁 후손이시지.

    꼬마 훈장은 진짜 훈장님의 말씀에 방긋 웃었다.

    어느 분께 글을 배웠느냐?

    네, 어머님께 배웠습니다. 언니랑 동생이랑 함께 배웠습니다.

    그래, 무엇을 배웠느냐?

    소학과 내훈(內訓)을 배우고 있습니다.

    훈장은 감탄했다.

    지금 배우고 있다면서, 배우는 걸 아이들에게 가르친단 말이냐?

    여자아이가 또 방긋 웃었다.

    네, 이렇게 하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공부가 재미있다고?

    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면 놀이도 됩니다.

    그럼 여기서 얼마나 놀다 가느냐?

    마지막 친구가 다 외울 때까지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제가 아는 걸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요.

    훈장은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여자아이를 보았다. 저보다도 나이 많은 남자아이들을 친구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이 아이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들 가운데 누가 가장 잘 외우느냐?

    여자아이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친구 도야입니다.

    사내아이 하나가 맨 뒷줄에서 손을 조금 들어 보였다.

    제가 도야입니다. 소학을 다 외울 수 있습니다.

    훈장이 보니 눈썹이 짙고 눈매가 반듯해 고집이 좀 세어 보였다.

    그래, 기특하구나. 너는 몇 살이냐?

    아홉 살이옵니다.

    얘야, 남을 가르쳐주려 하다니, 참으로 큰마음이다. 그 마음 늘 간직하여라. 사내였으면 큰 그릇이 될 터인데.

    훈장이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여자아이가 다소곳이 눈을 들어 훈장님을 바라보았다.

    네.

    훈장이 돌아간 후 두레 어멈이 함지를 이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천천히 오지.

    배들 고플까 봐요.

    두레 어멈은 너럭바위에 함지를 내려놓았다. 주먹밥 열댓 개가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주먹밥을 보자 환성을 질렀다.

    인아 아기씨, 제가 누룽지를 좀 넉넉히 눌러 따끈할 때 주먹밥 만들어 왔어요. 깨도 뿌렸으니 고소할 거예요.

    고마워, 유모.

    여자아이는 주먹밥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제 몫을 도야에게 주었다.

    도림이 아프니까 갖다 줘.

    그럼 너는?

    난 배가 안 고파.

    도림이는 도야의 두 살 아래 여동생이었다.

    너도 배고프잖아. 너 먹어. 도림이는 내 걸 나눠 먹으면 돼.

    여자아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 집은 가깝잖아. 얼른 집에 가서 먹을 테니 네가 먹어. 도림이가 빨리 나아서 공부하러 와야지.

    알았어. 고마워.

    그래, 다음에 만나자.

    인아는 미야의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갔다.

    바람이 시원하다. 미야, 언니가 업어줄까?

    아니. 나 밥 먹어서 무거워.

    도림이가 많이 아픈가?

    언니, 다음에도 안 오면 우리가 한번 가보자.

    그래. 그러자.

    인아와 미야는 집에 닿을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자매 사이에 날마다 소곤거릴 말도 많았고 웃을 일도 많았다. 인아는 꽃이 피면 핀다고 재미있어하고, 꽃이 지면 진다고 마음 아파하는 다정다감한 아이였다. 제 것을 아낌없이 남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우리 둘째가 주는 기쁨을 알았네요?

    신씨 부인이 남편에게 하소연 투로 말했다.

    허허, 그릇이 커서 그런걸.

    제 몸이 고단해질까 하는 소리지요.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인데요.

    신씨 부인은 둘째 딸이 여러모로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기대되면서도 혹시 너무 힘에 부치게 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강 참의 댁 부인이 세 딸에게 바느질을 가르치고 있는데 두레 어멈이 들어왔다. 이맛살에 주름이 잡힌 걸 보니 동네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마님, 참 불쌍한 일이 생겼지 뭐예요?

    일이라니?

    두레 어멈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네 집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네, 도야네 어멈이 세상 떴다네요. 원래 몸이 약한 사람인데 서방 죽고 나서 힘든 일도 마다 않더니 그만……. 없는 사람은 그저 죽어야 하는 모양이에요.

    인아와 미야의 눈도 커졌다.

    도야 어멈이?

    남편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참한 사람이…….

    신씨는 한숨을 내쉬며 유모에게 말했다.

    유모가 가보게. 도울 일이 있을 게야. 볏섬이라도 보내주게. 그리고 그 어린것들 맡아줄 친척은 있는지도 좀 알아보게.

    네, 그렇게 하지요. 마님, 복 받으실 겁니다.

    싱거운 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보게. 나도 잠시 짬을 내 들여다봄세.

    도야는 나무를 대주는 나무장수의 큰아들인데, 아버지는 병으로 죽었다. 아이의 됨됨이가 성실했고, 다소 고집도 세었다. 도야 어멈은 집안에서 큰일을 치를 때마다 와서 허드렛일을 도와주곤 했다.

    유모가 나간 다음, 인아가 눈물을 훔치면서 신씨에게 말했다.

    어머니, 부모님은 하늘과 같은 존재인데, 이제 도야랑 도림이는 슬퍼서 어떻게 살까요?

    신씨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겠느냐?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걸! 도야가 힘을 내는 수밖에!

    도야는 씩씩해요.

    신씨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림이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서 살아야지. 아직 두 아이만 살 수는 없을 텐데, 맡아 줄 친척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직 열 살도 안 된 것들이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느냐?

    인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뭔가를 한참 생각했다.

    어머니, 도야와 도림이를 우리 집에서 거두면 안 되나요?

    응? 우리 집엔 일꾼이 많은데?

    도야는 아주 똑똑해요. 어머니께서 거두시면 정말 든든한 청지기가 될 텐데요.

    아유, 우리 인아가 도야네를 끔찍이도 생각하는구나.

    인아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렇게 아버님 어머님도 계시고, 언니도 있고, 귀여워해 주는 문성이 오라버니도 있고, 문명이 오라버니도 있고. 그런데 도야랑 도림이는 엄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오냐, 알았다. 일단 장사가 끝난 후에 사정을 좀 알아보마.

    신씨 부인이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인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머니, 난 도림이가 예뻐요.

    그래, 우리 인아가 미운 사람이 어디 있니? 이 사람은 이래서 예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예쁘고. 그래서 따르는 사람이 많은 게 오히려 흠이구나. 사내였으면.

    인아는 바느질하다 옆으로 밀어놓았다.

    남자라서 좋은 점이 왜 여자에게는 좋은 점이 못 되나요?

    신씨 부인은 잠시 대답이 막혔다.

    그럼 똑똑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어요?

    신씨는 두어 번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별로 많지 않단다. 나이가 들수록 없어지고, 나중에는 정말 집안 살림밖에는 할 일이 없지. 이제 곧 혼기가 차서 혼인하게 되면 여자는 삼종지도를 따라야 하거든.

    신씨는 아이들에게 여자의 도리를 가르쳐주었다. 현아 언니와 미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인아는 고개를 몇 번이고 갸우뚱했다.

    도야네 집 장사가 끝나고 두레 어멈이 도야와 도림이를 데리고 왔다. 도야 남매는 신씨 부인에게 허리를 굽혀 절했다. 인아가 보니 도야 남매의 얼굴이 핼쑥했다.

    들어오너라.

    도야 남매가 방으로 들어오자 신씨 부인이 정답게 물었다.

    사랑채에서 마님은 뵈었느냐?

    네.

    그래, 도야는 작은아버지한테 간다고?

    네.

    인아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도야, 너는 우리 집으로 안 와?

    작은아버지가…….

    도림이가 도야의 손을 꼭 붙잡으며 도리질을 했다.

    나 오빠 따라갈래. 나도 데려가.

    도야가 도림이의 손을 꼭 잡아주며 일렀다.

    살림이 어려우셔서 안 돼. 한동네니까 내가 날마다 올게. 여기 인아 아기씨도 있고 미야 아기씨도 있잖아.

    도야가 신씨 부인의 눈치를 보며 인아와 미야의 이름 뒤에 아기씨를 붙였다.

    신씨 부인이 도림이의 손을 잡고 달랬다.

    그래, 도림아. 한 동네잖아. 언제든지 작은집에 놀러 가려무나. 그리고 여기엔 언니들이 많잖아. 다들 널 예뻐해 줄 게다.

    도림이 인아를 쳐다보며 입술을 옴쭉거렸다.

    인아 언니, 무서운데.

    인아가 도림이의 손을 끌더니 손목에 실팔찌를 끼워 주었다. 그 실팔찌는 현아, 인아, 미야, 세 자매의 우애를 뜻하는 물건이었다.

    아니야, 나 너 예뻐해. 공부할 때 네가 자주 졸아서 잠 깨게 하려고 일부러 무섭게 한 거야.

    도야는 도림이를 보고 눈물을 똑똑 흘렸다. 신씨 부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도야에게 말했다.

    언제든지 도림이를 데려가려무나. 도림이는 하녀가 아니야.

    정말이에요, 마님?

    도야의 젖은 눈이 반짝였다.

    그럼. 그러니 도야, 네가 쑥쑥 자라서 장정이 되고 일가를 이루면, 또 그 전이라도 도림이를 거둘 수 있으면 그리하려무나.

    도야가 두 손을 짚고 머리를 깊이 숙이며 신씨 부인에게 말했다.

    마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됐다. 큰 인사를 받을 일이 아니다. 어린 네가 너무 고단하지 않겠느냐?

    부모님과 같은 분들입니다. 고단한들 얼마나 고단하겠습니까?

    도야의 대답에 신씨 부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제 아홉 살 된 아이의 입에서 생각 깊은 말이 나오자 마음이 아팠다.

    ‘아직 철없이 뛰어놀 나이인데, 한 집안의 가장이나 할 수 있는 말을 하다니. 하룻밤 새 성큼 철이 들었구나.’

    신씨 부인이 유모에게 일렀다.

    아이들 먹을 것 좀 내오게. 그리고 저 아이 작은집에 보낼 양식도 좀 마련해 주게.

    네, 마님. 우리 마님 복 받으실 겁니다. 어찌 성정이 이리 따뜻하신지요.

    두레 어멈은 신씨 부인과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말했다.

    인아는 방긋 웃으며 도야를 보았다.

    도야야, 엄마 없다고 밥을 거르면 못 쓴대.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 사람은 밥심으로 산대.

    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니야, 그 말은 유모가 일꾼들에게 한 말이야.

    미야가 인아의 저고리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도야가 일을 하려면 밥을 많이 먹어야 하는데, 지금 아무것도 안 먹으려고 하잖아.

    인아 말이 맞아. 도야야, 인아 말 잘 들을 거지?

    신씨 부인이 둘째 딸을 보며 말했다.

    네, 마님.

    도야가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네가 잘 지내야 도림이도 지켜줄 수 있다. 너는 도림이에게 오라비고 아비고 어미니까. 그렇지?

    네…….

    도야의 눈에 다시 눈물이 어렸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도 눈물이 어렸다.

    오빠, 자주 와야 해.

    그래. 틈나는 대로 자주 올게. 이틀 건너 한 번은 올게.

    헤어지지 말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든지, 쟤들 둘 다 작은집에서 살면 안 돼요?

    인아가 묻자 신씨 부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애 작은집이 어렵다더라. 보릿고개가 머지않은데 어렵지. 그래도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좋은 날이 올 거야.

    네, 마님.

    도야의 눈이 반짝였다. 좋은 날이 올 것을 확실히 믿는 얼굴이었다. 애써 밝은 표정으로 동생을 달래고 어루만져 주는 도야를 보며 인아의 얼굴에도 웃음이 다시 살아났다.

    어머니의 눈물

    1611년. 금천 시골 마을. 강석기의 집.

    마님, 따님이십니다. 꽃 같은 따님이세요.

    해산 어미가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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