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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 1권
그놈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 1권
그놈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 1권
Ebook216 pages2 hours

그놈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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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is ebook

“선배의 시간을 살게요! 시간당으로 계산해서.”
“내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같이 자주기까지 하냐. 빨리 이불 덮고 눈 감아. 불 끄고 가줄…….”
“과외비의 열 배를 드릴게요.”
잘못 들은 거 아니겠지? 나른하기만 했던 내 두 눈이 빛난 건 이 순간부터였다.
“야간 수당 1.5배 착실히 붙여 드리고요.”
“베개 하나 더 있지?”

Language한국어
PublisherJOARA ROMANCE
Release dateMay 21, 2019
ISBN9791132756576
그놈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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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놈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 1권 - 르릅

    [1부]

    1. 그놈이 싫은 이유

    나는 애쉬 카인드로퍼가 싫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가시면 안 돼요?! 반나절만! 아니… 그 반의 반나절만이라도.

    선배.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서, 선배. 제발요.

    지금 너 때문에 내 귀한 시간이 2분 1초째 낭비되고 있어. 2초, 3초, 4초, 5초…….

    애초에 개인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만큼 친밀한 사이도 아니다.

    돈 드릴게요! 돈요!

    널브러져 있던 책을 단숨에 정리하고 가차 없이 뒤돌아 나가려던 나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등 뒤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강의료의 두 배를 드릴게요.

    뭐?

    어처구니가 없는 애쉬의 말에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었다.

    …네 배.

    쓰읍! 이게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안 되겠어, 너의 그 편협한 정신머리를 고쳐 줘야겠어!

    네! 혼내주세요!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애쉬의 목소리가 우울을 걷어내고 한껏 상기되었다.

    혼날 건데 왜 좋아해?

    좋아하지 않았어요! 반성하고 있어요!

    세상 어느 누가 저렇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반성하냐.

    입꼬리 내려.

    애쉬가 단숨에 표정을 바꾸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대고 자못 진지한 투로 애쉬를 불렀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덥수룩한 머리 탓에 그의 눈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그런 부패한 마음은 좋지 않아. 너의 그런 부정적인 사상이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다고 가정해 보자.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하잘것없이 변질되겠니. 돈보다 훌륭한 것들은 아주 많단다. 이를테면… 사랑, 우정, 용기, 희망, 뭐 그런 것들 있잖아.

    애쉬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경청했다.

    …하지만 넌 아직 그런 것들을 배우기에 익숙하지 않을 거야. 아카데미에서야 네가 내 후배지, 밖에 나가면 돈을 펑펑 쓰는 황자님이잖아.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한순간에 바뀔 수 있겠어? 그러니 나에게만은 돈을 조금 쓴다고 해서 크게 꾸짖지는 않을게.

    인심 쓰듯 말하자 애쉬가 감격한 얼굴로 크게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애쉬, 돈이 최고인 줄 아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 누군지 알아?

    …곤히 자고 있는 강아지 꼬리를 밟은 사람요?

    일리 있어. 그것도 충분히 나쁜 놈이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놈은 말이야… 바로 거짓말하는 사람이야. 난 너를 거짓말하는 나쁜 놈으로는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내뱉은 대로 강의료의 네 배는 꼭 지불하렴.

    네,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흡족하게 웃으며 애쉬의 정돈되지 않은 금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네가 원하니 오늘은 수업을 조금 더 연장해서 해볼까? 어디까지 했더라……. 오베트 황제 폐하 서거 직후에 대한 부분이었던가.

    9대 황제이신 오베트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시자마자 야만인 군대가 수도를 침략해 나라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무너져가는 수도를 10대 황제이신 헬카른 폐하께서 단 이백의 군사들과 함께 야만인을 몰아냈습니다!

    간혹 내가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면 애쉬는 과할 정도로 자신의 ‘잘한 짓’, 혹은 ‘착한 짓’을 뽐내려고 한다. 지금처럼.

    …애쉬, 그건 내일 배울 분량인걸?

    과하다.

    애쉬의 하얀 목덜미가 단숨에 붉어졌다.

    …예습했어요.

    의심이 든다. 내 제국사 강의가 애쉬한테 도움이 되고 있긴 한 건지. 가끔 과외하다 보면 교수님 앞에서 과제를 발표하고 있는 듯한 기분 나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별 대답 없이 애쉬를 바라보고만 있자 그의 긴 손가락이 어울리지 않게 꼼지락 움직이더니 내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나 잘했죠?

    손을 뻗어 다시 애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예습을 아주 완벽하게 해왔네.

    애쉬가 쑥스러운 듯 입꼬리를 들썩이며 웃었다.

    내일 수업은 없애도 되겠다. 진도는 정해진 스케줄대로 나가야 하니까. 내일은 푹 쉬고 우리 이틀 뒤에 만나자.

    콰강!

    애쉬는 머리 위로 벼락을 맞은 듯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바짝 경직시켰다.

    아니에요! 저 몰라요! 커닝한 거예요! 선생님, 아니 선배! 내일 우리 또 만나요, 제발요!

    애쉬가 일어서는 내 옷자락을 붙들며 안겨왔다. 장신의 남자가 엉겨 붙으니 몸이 휘청휘청 흔들린다.

    야, 야, 좀 떨어져.

    제발요, 선생님. 아니, 선배.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애쉬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반 정도는 장난으로 건넨 말이었던지라 그의 울먹거림에 적잖이 당황스러워진다.

    뚝, 울지 마. 울면 나 갈 거야.

    울지 않았어요!

    애쉬가 내 허리를 양팔로 힘주어 껴안으며 어깨 위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힘을 줘봤지만 마치 거대한 산을 옮기고자 하는 미련한 짓과 같았다.

    헛수고다.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애쉬의 아이 같은 투정에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내어 그를 불렀다.

    애쉬, 정강이 까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떨어져 줄래?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온몸을 찰싹 붙이고 있는지라 애쉬가 움찔 떠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

    이제 좀 사지가 자유로워지겠거니 했는데… 허리에 둘려있는 팔이 더욱 강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야!

    선배가 때리는 건 무척 아프지만… 떠나는 것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파요. 제발 가지 마세요.

    안 가! 내일도 수업 올 거라고!

    내가 떠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애쉬는 늘 종말을 눈앞에 둔 사람의 모습처럼 나에게 매달렸다.

    내 입에서 기어코 안 간다는 말이 나오자 녀석이 절대 풀지 않을 것 같던 팔을 느슨하게 하고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곤 나를 빤히 바라본다.

    머리카락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벽안이 참 예쁘게 생겼다고… 생뚱맞게 생각했다.

    약속하는 거죠?

    응.

    선배는 거짓말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으니까…….

    그래.

    속도 없이 헬쭉 웃는 그를 보며 숨기지 않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어쩌다 싫어하는 이놈이랑 지지고 볶고 난리를 치고 있는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애쉬 카인드로퍼와 두 마디 이상을 나누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와 어떠한 접점이나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개미의 다리털만큼도 없는 놈이니까.

    그래,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랬었다.

    * * *

    이벨린!

    아카데미 정문에 득실득실 모여있는 인파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빼꼼 튀어나왔다. 기숙사로 향하고 있던 발이 멈춰 섰다.

    하아…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지는 줄 알았어!

    지금 떠나는 거야?

    로즈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자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칼이 붕― 붕― 소리를 내며 묵직하게 흔들렸다.

    제 이름처럼 붉은 로즈의 머리칼은 굵은 모발과 넘쳐나는 숱으로 인해 평소에는 퉁퉁 불린 미역과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오늘만은 공을 들였는지 머리카락다워 보이긴 했다. 모르긴 몰라도 저것들을 빗어낸 팔은 다음 날 근육통으로 꽤나 고생할 것이다.

    귀찮아서 양치도 하지 않고 잘만 잠드는 로즈가 무려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니, 오늘이 방학이 맞긴 맞는구나. 시험의 마지막을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도 실감하지 못했는데 로즈의 머리를 보니 단번에 방학이라는 글자가 와닿았다. 지긋지긋한 아카데미의 기숙사를 떠나 본집에 있는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나에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지…….

    로즈의 시선이 내 얼굴 밑으로 떨어졌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양팔로 간신히 받쳐 들고 있는 『풀리지 않는 고대의 불가사의』라든가 『합리적인 사고와 의사 결정의 중요성』, 혹은 『자산, 부채, 자본, 재무 분석법』 등의 두꺼운 다량의 책들을 본 것이다.

    이벨린, 너만 빼고.

    난 여기에 남아서 공부하는 편이 훨씬 좋아.

    로벤스디 공작 저하께서 걱정하실 거야.

    이복동생을 걱정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오빠가 아니라서 괜찮아.

    하지만 너도 로벤스디잖아. 이벨린 로벤스디.

    로즈의 말에 거하게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조잘조잘 잘도 떠들던 로즈가 입을 꾹 다문다.

    대답하기 껄끄러운 것이 당연하지. 내가 로벤스디 공작가에서 버려졌다는 것쯤이야 까막눈 노인에게 물어도 다 아는 사실이니까.

    로즈가 눈만 슬쩍 굴려서 내 눈치를 살폈다.

    하여간 오지랖하고는.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로즈의 반짝거리는 에나멜 구두를 신발 앞코로 툭 쳤다.

    로벤스디 저택으로 들어가면 난 찬밥 신세는 감지덕지고 눌어붙은 누런 썩은 밥 신세가 될 거야.

    경쾌하게 이야기했지만 로즈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다.

    …….

    로즈, 신경 쓸 것 없어. 로벤스디가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야. 하루아침에 ‘로벤스디’라는 성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럼 우리 저택으로…….

    사양할게. 텅 빈 아카데미 안에서 마음 놓고 공부하는 편이 더 끌린다.

    사실… 방학도 했으니 기분 전환 겸 장소를 옮겨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로즈네 가문인 프로와즈 저택은 굉장히 나쁜 선택지였기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작년 여름방학 때 프로와즈 저택에서 일주일 동안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집 주방장 솜씨가 영 엉망이라서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차라리 하루 종일 내 발가락을 빨고 있는 것이 훨씬 맛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끔찍했다.

    이벨린, 네가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 난 무척이나 아쉽지만.

    최대한 인자하게 웃어 보이며 어서 정문 밖으로 나가라고 훠이훠이 손짓했다.

    그 악마의 주방장이 있는 마굴로 날 끌어들이지 마.

    어서 가.

    로즈의 몸은 정문을 향했으나 미련이 남았는지 자꾸만 내 쪽을 힐끔거린다.

    가, 가라고. 난 안 가니까!

    아얏!

    쿵! 소리와 함께 로즈의 캐리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쇳덩이를 담은 것도 아닐 텐데 소리가 요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앞을 보고 걸어야지!

    넘어져 있는 로즈를 향해 서둘러 뛰었다. 누군가에게 부딪힌 로즈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엉덩이를 문질렀다.

    괘, 괜찮으세요?

    깊이 있는 미성이 귓가를 자극했다. 그러나 말투는 퍽 어눌하여 분명 한 사람이 말했건만 마치 두 사람의 것처럼 이질적인 목소리였다.

    어? 으, 응!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앞을 제대로 안 보고 걸어서 그런 건데, 뭘.

    로즈와 부딪친 남자는 키가 컸다. 목을 한참이나 뒤로 꺾어야지만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제가 조금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괜찮아!

    죄송합니다.

    누가 봐도 로즈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인데도 남자는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했다. 눈을 가리는 그의 덥수룩한 금발 머리가 공중에서 안쓰럽게 나부낀다.

    괜찮대도.

    저 때문에 넘어지시기까지 했는데요…….

    한 명은 계속 사과하고 한 명은 계속 용서하는 상황이 질릴 정도로 반복되었다.

    …만담쇼 하는 거야, 뭐야? 바빠 죽겠는데.

    로즈를 외면하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보다 못한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리숙하고 맹한 남자 앞에 서니 남자가 몸을 움찔 떨며 놀란다.

    …누가 때리기라도 하나.

    그래, 너. 애쉬 카인드로퍼. 앞으로는 뒤 보면서 걷는 사람까지 잘 봐가면서 다녀. 정신 빼놓지 말고.

    로즈가 팔뚝을 툭툭 치는 것이 느껴졌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로즈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던 것에 비해 다소 소극적인 태도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반대편으로 후다닥 걸어 나갔다. 긴 다리가 착! 착! 소리를 내며 아주 빠르게.

    이벨린! 말이 너무 심했어. 쟤 울면 어떡해.

    …애도 아니고.

    게다가 내가 느끼기엔 그렇게 심한 말도 아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라는 로즈의 잔소리 같은 충고가 몇 분 이어지더니, 로즈를 찾는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로즈는 캐리어를 쥐었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애쉬에게 사과라도 해.

    고개를 끄덕이며 로즈에게 손 인사를 했다.

    로즈가 인파 속으로 다시 사라지고 나서야 열심히 흔들던 팔을 내렸다.

    사과는 무슨.

    나는 애쉬 카인드로퍼가 싫다.

    관리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하며 답답할 정도의 소심한 성격, 짜증 나는 어리벙벙함, 우물쭈물하는 바보 같은 몸짓까지. 내가 딱 싫어하는 면모를 고루 갖춘 인간이다.

    애쉬 카인드로퍼가 지나갔던 빈 거리를 뒤늦게 눈으로 좇았다. 지금은 한산해졌지만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마법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애쉬에게 쏠렸던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명실상부 황립 아카데미의 유명인이다. 나와 키우는 햄스터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 사교성 제로인 로즈가 단번에 이름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리 사회 계급이 통용되지 않는 아카데미 안이라고 해도 애쉬 카인드로퍼가, 아니 애쉬 카인드로퍼 펜테리온이 이 나라의 막내 황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더불어 역대 아카데미생들을 통틀어도 애쉬처럼 마법을 잘하는 이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비실비실한 마법 생도들이 판치는 가운데 애쉬의 떡 벌어진 어깨와 체격은 유독 눈에 띄었다. 덥수룩한 머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그의 잘난 이목구비도 유명세에 한몫 기여했다.

    나는 품 안에 든 책을 조금 더 꽉 끌어안으며 등을 돌려 기숙사로 향했다.

    애쉬. 애쉬 카인드로퍼는 내가 싫어하는 면모를 모조리 갖춘 인간이기도 하면서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것을 태생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수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정상이라 불리는 실력, 부, 명예 하는 것들을.

    나중에 만나게 되면, 이라고?

    로즈의 말을 곱씹으며 코웃음 쳤다.

    그 짜증 나는 놈을 내가 왜 또 봐?

    보면 답답하고, 보면 억울해지는 그놈을.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나는 그다음 날 애쉬를 또 마주쳐야 했다.

    2. 그놈과 내가 엮여버린 이유

    …….

    …….

    녀석은 아침부터 오해를 사기 딱 좋은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물에 푹 젖은 꼴로 기숙사 건물 앞 정원에서 흙과 풀을 골고루 묻힌 채 가쁜 숨을 연신 내뱉고 있었는데 젖은 채로 다 풀어 헤쳐진 와이셔츠 사이로 드러난 판판한 살갗 위에는 붉은 자국들이 군데군데 찍혀 외설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아침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돼 정원을 한 바퀴 거닐려던 계획을 날려버렸다. 저놈을 앞에 두고 산책하다간 어제 먹은 저녁까지 배로 얹혀버릴 것이다.

    젖은 머리칼 사이로 애쉬의 눈과 정통으로 마주쳤지만 나는 보지 못한 척 태연하게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아카데미를 떠난 이 시점에 왜 저 모양 저 꼴로 여기에 쓰러져 있는지는 의문이었으나 괜히 말 한번 잘못 걸었다가 몹시 귀찮은 일에 말려들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난 못 본 거야. 아무것도 못 봤어.

    괜히 구름 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데 애쉬의 시선이 아주 끈질기게 내 옆얼굴로 따라와 붙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도와줘요.’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누구세요?’

    눈을 피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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