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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 1: 신을 죽인 여자
로어 1: 신을 죽인 여자
로어 1: 신을 죽인 여자
Ebook410 pages3 hours

로어 1: 신을 죽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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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와 《헝거게임》이 만나다!
7년마다 일주일간 아곤에서 펼쳐지는 인간 vs 신의 대결전

너희의 힘과 능력을 펼쳐라.
너희의 용맹한 검을 신의 피로 물들여라.
그러면 그 신의 지위와 불사의 능력을 너희에게 상으로 내릴 것이다.
이러한 행운에 대해 너희에게 응분의 대가를 요구하니,
그날이 오면, 세상의 배꼽이 지명하는 곳에 모여 너희의 사냥을 시작하라.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할 그 날이 올 때까지
사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Language한국어
Release dateFeb 25, 2022
ISBN9791192081212
로어 1: 신을 죽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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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어 1 - 알렉산드라 브라켄

    지은이 알렉산드라 브라켄 Alexandra Bracken

    1987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버지니아주 윌리엄 앤 매리 대학에서 영문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스타트렉> 골수팬이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상상력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랐다. 독특한 세계관과 짜임새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는 뉴욕 소재 아동 출판사에서 6년간 편집자로 일하다 전업 작가가 되었다.

    그녀의 작품 중 15개국으로 수출되어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는 《다키스트 마인드The Darkest Minds》는 2018년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그 외에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패신저The Passenger》 시리즈 등이 있다.

    옮긴이 최재은

    숭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다년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했으며,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타투 사냥꾼》, 《진짜 모습으로 승부하라》 등이 있다.

    LORE by Alexandra Bracken

    Copyright Ⓒ 2021 by Alexandra Bracken

    All rights reserved.

    This Korean edition was published by Vision B&P in 2022 by arrangement with Alexandra Bracken c/o Writers House LLC through KCC (Korea Copyright Center Inc.), Seoul.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KCC(한국저작권센터)를 통해

    Alexandra Bracken c/o Writers House LLC와 독점 계약한 (주)비전비엔피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나의 그리스 가족에게 바칩니다.

    Σας αγαπώ όλους (모두 사랑합니다.)

    생존 가문

    · 카드모스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뱀

    아레스가 환생한 래스에 의해 가문 승격(그리스신화의 영웅 카드모스는 제우스에게 납치된 여동생 에우로페를 찾으러 모험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델포이 신탁에서 받은 장소에 테베라는 도시를 건설하는데, 그곳에서 카드모스가 처치한 괴물이 뱀이었다.-역주)

    · 오디세우스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트로이 목마

    아프로디테가 환생한 하트키퍼에 의해 가문 승격(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며 트로이전쟁이 벌어지자 오디세우스는 목마를 고안해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끈다.-역주)

    · 테세우스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미노타우로스

    (아테네가 크레타에 공물로 보낸 젊은 남녀 중 한 명으로 미궁 속에 들어가 황소 머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크레타 공주가 건네준 실을 따라 미궁 속을 빠져나온다.-역주)

    · 아킬레우스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전사

    (그리스신화 트로이전쟁의 영웅, 불사의 운명이었으나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사망한다.-역주)

    · 페르세우스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고르곤(메두사)

    포세이돈이 환생한 타이드브링어에 의해 가문 승격(그리스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는 여신 아테나가 빌려준 방패 아이기스를 이용하여 고르곤 세 자매 중 메두사의 목을 베고 메두사의 머리는 방패와 함께 아테나에게 바친다. 아테나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이기스의 장식으로 삼는다.-역주)

    멸족 가문

    · 멜레아그로스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칼리돈의 멧돼지

    (그리스신화의 영웅 멜레아그로스는 칼리돈의 왕자였다. 칼리돈의 왕이 심기를 불편하게 하자 아르테미스는 칼리돈에 괴물 멧돼지를 보내 해를 입히는데, 멜레아그로스는 멧돼지 사냥대회를 열어 수많은 영웅들이 참가한 가운데 본인이 멧돼지를 죽인다.-역주)

    · 벨레로폰테스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페가수스

    (그리스신화의 영웅 벨레로폰테스는 천마 페가수스를 타고 키마이라 등 많은 괴물을 물리치지만 나중에 마음이 오만해져 신들의 영역을 노리다 제우스의 분노를 사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역주)

    · 이아손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숫양

    (그리스신화의 영웅 이아손은 빼앗긴 왕권을 되찾기 위해 아르고호 원정대를 결성하여 온갖 역경을 헤치고 황금 양털을 찾아오지만 왕권을 되찾지 못한다. 이에 이아손의 아내 메데이아가 늙은 숫양으로 마법을 부려 왕의 딸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게 만든다.-역주)

    · 헤라클레스 가문 ·

    가문의 상징 문장 : 네메아의 사자

    디오니소스가 환생한 레블러에 의해 가문 승격(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부과된 열두 가지 과업 중 첫 번째인 불사의 네메아 사자를 죽이고 그 가죽을 갑옷처럼 걸치고 다닌다.-역주)

    하늘의 신은 어스름한 황혼 속에 홀로 서서 빛을 발하며 말씀하셨다.

    들어라, 지난날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

    수많은 괴물과 왕을 해치운 자랑스러운 전사들의

    피를 물려받은 후예들아.

    너희에게도 영원한 영광을 차지할 기회를 주기 위해

    내가 너희를 마지막 아곤으로 부르노라.

    아홉 신이 나를 배반했으니, 이제 그들에 대한 잔인한 복수를 명한다.

    일곱 해에 한 번씩 일곱 날 동안

    그들도 너희 인간들처럼 필사의 몸으로 땅을 걷게 될지니,

    너희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예 중 누구든

    너희에게 지워진 운명의 길을 깨뜨리고

    너희의 생명줄을 불멸의 황금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너희의 힘과 능력을 펼쳐라. 너희의 용맹한 검을 신의 피로 물들여라.

    그러면 그 신의 지위와 불사의 능력을 너희에게 상으로 내릴 것이다.

    이러한 행운에 대해 너희에게 응분의 대가를 요구하니,

    그날이 오면, 세상의 배꼽이 지명하는 곳에 모여 너희의 사냥을 시작하라.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할 그날이 올 때까지

    사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올림피아에서 제우스

    오디세우스 가문의 크레온 번역

    차례

    1권

    1부 · 신들의 도시

    2부 · 불을 품다

    그는 자신의 몸 아래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바닥과 인간에게서나 풍기는 피비린내에 정신이 들었다.

    정신과 달리 몸은 회복이 더뎠다. 그의 피부가 방금 불에 달궈진 점토처럼 조여들자 불쾌한 느낌이 온몸을 뜨겁게 관통했다.

    파란색 얇은 옷 속으로 스며든 풀밭의 이슬이 등을 적셨고 맨다리와 맨발을 뒤덮은 흙먼지가 느껴졌다. 굴욕감으로 머리에서 발뒤꿈치까지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7년 만에 처음으로 그는 오한을 느꼈다.

    이 순간 그의 몸속을 흐르는 인간의 피는 태양빛 액체인 이코르에 비하면 흙탕물처럼 질척질척했다. 이코르는 지난 7년간 그의 몸에서 인간의 모든 흔적을 불태워 버렸다가 이제 다시 그를 세상 속으로 돌려보냈다. 7년 동안 그는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온 땅을 휩쓸며, 살인자들의 포악한 심장에 불을 지피고 작은 불씨에 지나지 않았던 갈등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키웠다. 그는 분노의 화신이었다.

    육신의 한계를 다시 느끼는 것은, 이 상처 입기 쉬운 껍데기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는 옛 신들에게 연민마저 느꼈다. 그들은 이 만행을 어떻게 212번이나 겪으며 살아왔단 말인가.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번이 그가 인간의 육신을 맛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감각이 아직 완전히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는 이 도시와 도시가 품고 있는 거대한 공원을 알아봤다. 희미한 하수구 냄새와 뒤섞인 잔디의 풀 내음이 났다. 근처를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땅속 깊이 도시의 정맥을 타고 분주하게 흐르는 전기신호들이 느껴졌다.

    그의 양 입가는 미소 짓는 법을 기억해내라고 강요라도 당한 듯 어색하게 올라갔다. 이곳은 한때 그의 도시였다. 그가 인간이었을 때, 이 도시의 거리는 그에게 부를 안겨주었고 도시의 탐욕가들은 그에게 권력의 파편을 떼어 팔았다. 한때 맨해튼은 인간인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는 신이 된 그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리라.

    그는 몸을 뒤집어 웅크렸다. 그리고 팔다리의 감각이 완전히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어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우뚝 섰다.

    검붉은 피가 그의 주위로 강을 이루듯 흘렀다. 얼굴에 쓴 마스크가 찢겨 나간 어린 소녀가 구덩이 가장자리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목에는 여전히 칼이 꽂혀 있었다. 한 남자의 몸통에서 떨어져나간 머리에 말 문양의 마스크가 씌어 있었고 손가락이 잘려나가 늘어진 손안에는 단검이 반듯이 놓여 있었다.

    오른쪽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옆구리로 손을 뻗었지만 그의 검은 거기에 없었다. 근처의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세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더니 앞을 가로지르는 돌길을 건너왔다. 그들의 얼굴은 뱀 머리 문양의 청동 마스크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의 인간 후예들이다. 카드모스 가문. 그들이 그를, 자기들의 새로운 신을 모시러 온 것이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우두둑 소리가 날 때까지 목을 스트레칭했다. 경외심으로 가득 찬 헌터들의 눈빛을 보자 흐뭇했다. 지난번 뉴아레스였던 그의 전임자는 전쟁의 신이라는 지위를 맡을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 7년 전, 전임자를 죽이고 그의 신권을 차지하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후련함을 느꼈다.

    세 명 중 가장 키 큰 헌터가 앞으로 나섰다. 벨런이다. 그 젊은이가 무자비한 사냥에 쓰러진 시체들 몸에서 화살을 뽑는 동안 새로운 신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살아 있는 유일한 자식이 서자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녀석은 아리스토스 카드모스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아리스토스 카드모스는 바로 이 새로운 신이 인간이었을 적 이름이다. 그런데도 그는 녀석의 모습을 보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벨런은 마스크를 들어 올리고 존경을 표하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신은 손을 뻗어 녀석의 얼굴선을 더듬었다. 아이의 얼굴선은 자신과 거의 비슷하다. 수십 년 동안 그의 껍데기에 자국을 남겼던 세월의 흔적들은 그가 신으로 승격하면서 모두 벗겨져 나가고 이제 그의 몸은 다시 젊어져 있었다. 앞으로 영원히, 가장 빛나던 시절의 몸으로 살게 되리라.

    우리 중 가장 영예로운 분이시여. 벨런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아이는 등 뒤 가방에서 둘둘 말린 꾸러미를 꺼내 새로운 신에게 내밀었다. 신이 지금 입고 있는 흉측한 하늘색 튜닉을 대신할 다홍색의 실크 튜닉이었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충성의 표시로 성하의 이름을 받들기 위해 적들의 피를 바칩니다. 성하께서 다시 신의 힘을 되찾는 날이 올 때까지 목숨 바쳐 성하를 보호하기 위해 저희가 왔습니다.

    새로운 신이 말을 하려고 하자 마치 자갈이 자신의 목을 긁는 것 같았다. 그건 그쯤 하고.

    네, 성하. 벨런이 대답했다.

    벨런의 뒤로 더 많은 헌터들이 다가왔다. 모두 검은색 헌터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신과 마찬가지로 하늘색 튜닉을 입은 누군가가 헌터들에게 끌려왔다.

    그자를 내게 데려오라. 새로운 신이 벨런에게 명령했다.

    그때 인근 도로에서 검은색 SUV 두 대가 나타나더니 라이트를 끄고 잔디밭을 그대로 가로질러 다가왔다. 카드모스 헌터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센트럴파크의 풀밭 위에 방수포를 펼치더니 그 위로 죽은 헌터들의 시체를 굴려 올리고 땅을 뒤집어엎어 피투성이 잔디를 숨겼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세 번째 SUV의 트렁크에는 참혹하게 학살당한 시체들을 실었다.

    공원 건너편에서 다른 가문들도 똑같은 일을 치르는 중일 것이다.

    포로는 앞으로 끌려 나오면서 다시 악을 써대고 미친 짐승처럼 바로 옆에 있는 헌터들을 자기 머리로 마구 갈겼다. 헌터들은 포로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포로의 발목 힘줄을 양쪽 모두 잘라놓은 상태였다. 완벽하다.

    헌터들은 그를 무릎 꿇은 자세로 일으켜 세웠다. 새로운 신은 손을 뻗어 포로의 머리에서 두건을 벗겼다.

    그를 노려보는 포로의 황금빛 눈이 활활 타오르며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렸다. 이마의 상처에서 쏟아지듯 흐르는 피가 한때 광채를 내뿜었던 그의 피부와 튜닉을 붉게 물들였다.

    너는 이제 쓸 만한 힘은 모조리 빼앗겼다. 새로운 신은 옛 신의 갈색 곱슬머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그의 머리를 뒤로 홱 젖히며 옛 신의 시선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신 살해자, 네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다. 옛 신이 고대어로 말했다. 하지만 네놈은 절대 그것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신은 그것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했다. 새로운 신의 분노는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희열이었다. 그는 옛 신의 연약한 인간 육신의 살갗 위에 날카로운 칼끝을 갖다 댔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사기꾼. 메신저. 여행자. 도둑. 새로운 신은 포로를 이렇게 부르고는 그의 척추가 지나가는 등줄기에 칼을 힘껏 꽂았다. 그리고 이제, 무용지물.

    칼이 박힌 자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새로운 신은 옛 신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면서 그의 마음속에 차오르는 두려움과 고통, 충격을 깊이 들이마셨다. 옛 신의 그 모든 힘을 새로운 신이 자신의 능력으로 차지할 수 없다니 이보다 더 아쉬운 일이 있을까.

    세상사가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새로운 신은 몸을 굽혀 옛 신의 눈에서 마지막 생명의 빛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네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방식 말이야. 그들 역시 옛 신들이 죽어야 새로운 신들이 떠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을 둘러싼 공원은 조용했다. 오로지 새로운 신이 칼날을 슥삭거리는 축축한 소리와 그가 마침내 옛 신의 몸에서 머리를 잘라내는 순간 ‘툭’ 하는 경쾌한 소리만이 허공을 울릴 뿐이었다. 새로운 신은 자신의 추종자들이 볼 수 있도록 헤르메스의 머리를 하늘 높이 쳐들었다.

    희열에 들뜬 헌터들은 모두 거친 숨을 내뿜으며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새로운 신은 헤르메스의 머리통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보고는 다른 시체들이 쌓여 있는 방수포 위로 던져버렸다. 아침이 밝으면, 밤사이 센트럴파크 안에서 불꽃처럼 나타났던 여덟 명의 신과 그 신들을 죽이려다 무수히 쓰러져 간 헌터들이 남긴 흔적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을 것이다.

    도시는 간신히 수습된 혼란으로 고통스럽다는 듯 그를 둘러싸고 툭탁툭탁 신음했다. 도시는 곧 닥쳐올 공포의 노래를 불렀다. 물론 그는 도시의 열망을, 속박에서 풀어달라는 간절한 외침을 알아들었다.

    나는 분노의 신, 래스다. 새로운 신은 무릎을 꿇고 피를 흠뻑 머금은 진흙 속에 손을 담갔다.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그리고 진흙을 퍼 올려 양쪽 뺨에 문질렀다. 너희의 존엄이 바로 나다.

    그를 둘러싼 헌터들도 마스크를 얼굴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기들의 신을 따라 각자의 의욕 충만한 얼굴에 축축한 흙을 문질렀다.

    새로운 시대가, 바로 저기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서, 감히 용기를 내어 손을 뻗을 강력한 자가 얼른 자신을 붙잡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신이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한다.

    1

    예전에 엄마가 그랬다.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려면 그 사람과 싸워보는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싸움에서 알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상대가 가장 얻어터지기 싫어하는 부위가 어디인지였다.

    지금 로어가 맞붙은 상대의 그 부위는 보아하니 새 타투를 새기고 반창고도 떼지 않은 왼쪽 가슴팍이었다.

    로어는 양손을 들어 올려 400그램짜리 글러브로 상대의 허접한 펀치를 온전히 받아냈다. 뒤로 한 발 물러서자 그녀의 스니커즈가 푸르스름한 싸구려 깔개 위에서 끽끽거렸다. 링을 급조해서 그리느라 바닥에 붙여놓은 은색 접착테이프는 다섯 번의 격투 시합을 치르고는 습기와 열기에 점점 벗겨지기 시작했다. 로어는 바닥의 테이프 접착선을 뒤꿈치로 짓이겨 밟으며 사납게 으르댔다.

    얼굴이 땀범벅이 되자 입에서 온통 짠 내가 났다. 땀 때문에 눈이 따가웠지만 로어는 굳이 닦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따가움이 좋았다. 덕분에 집중이 더 잘됐다.

    이건, 그러니까 이 싸움은 그냥 최근에 생긴 나쁜 습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섯 달 전 길버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떻게든 감정을 발산할 구실이 필요했던 로어에게 싸움이 그 역할을 해준 것뿐이었다. 원래는 딱 한 번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지만, 너무도 낯익은 느낌, 온몸을 휩싸는 아드레날린을 느끼자 한 번뿐이라던 처음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처음 싸웠을 때만 해도 머리를 비우고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다 보니 사무치는 슬픔에서 벗어나기엔 충분했다. 두 번째 싸움에선 심장을 후벼 파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더니 세 번째부터는 돈이 꽤 짭짤하게 들어왔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오늘 밤은 특히 딴 데 정신을 팔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로어는 열다섯 번째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 로어가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구실이었다. 아무리 싸워도 더 이상 속이 후련해지지 않으면, 싸울수록 가슴속 깊이 묻어둔 것까지 너무 많이 파헤친다 싶으면 그때 그만두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부족하다.

    중식당인 레드드래곤의 비좁은 지하실은 후덥지근했다. 바닥의 깔판 둘레로 흥분한 몸뚱이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파이터들의 움직임을 따라 관중들이 함께 움직이자 바닥의 링도 끊임없이 자리를 옮겼다. 다들 일회용 컵에 가득 담긴 술을 흘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여기저기서 걷힌 판돈이 사람들의 손에서 손을 거쳐 시합 매니저인 프랭키에게 건네졌다. 로어가 흘깃 보니 프랭키는 다음 두 시합을 위한 주문과 내기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프랭키는 항상 승리자보다는 판돈에 더 신경 썼다.

    위층 주방에서 계단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연기 때문에 지하의 공기가 부드럽게 흐늘거리는 것 같았다. 격투장과 나이트클럽으로 번갈아 쓰이면서 지하 공간에 찌든 오랜 토사물과 맥주 냄새에 위층에서 내려오는 쿵파우 치킨 냄새가 더해져 묘한 악취를 풍겼다.

    사람들은 악취가 그렇게 거슬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엇이든 흥분의 한계를 맛볼 수 있도록 부추기는 것이라면 악취인들 무슨 상관이랴. 프랭키의 ‘특별한’ 초대 목록도 요즘 들어선 그렇게 특별한 것 같지 않았다. 처음엔 모델들이나 사업가들, 그림에나 나올 법한 애들이 와서 하얀 가루약을 주고받으며 놀더니 요즘엔 자기 부모가 어디까지 무관심할 수 있는지 시험이라도 해보려는 듯 사립학교 애들까지 종종 몰려왔다.

    로어와 또래인 듯한 격투 상대는 온통 말랑말랑하고 멀끔한 피부에 거저 물려받은 자신감뿐인 남자애였다. 남자애는 조금 전 프랭키의 파이터 목록에서 선택한 로어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웃었다. 로어는 술 취한 녀석이 자신에게 ‘이쁜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며 여유작작 손키스를 날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녀석을 박살 낸 다음 혹시라도 남아 있을 놈의 마지막 자존심 쪼가리마저 무참히 짓밟아줄 작정이었다.

    안 봐도 뻔하네. 로어는 녀석의 가슴께에 새로 새겨 반창고로 고이 감싼 타투를 턱으로 가리키며 마우스피스를 낀 입으로 말했다. 살며, 사랑하며, 웃으며? 아니면 먹고 죽자라고 새긴 건가?

    구경꾼들이 웃어대자 남자애는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부릅뜨더니 곧 온몸의 힘을 쥐어짜듯 낑낑대며 로어의 머리를 향해 펀치를 날렸다. 맥없는 몸놀림에 녀석의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훤히 드러난 목표 지점을 포착한 로어는 타투가 아물지 않은 남자애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남자애는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얼른 일어나지? 네 친구들 쪽팔리게 하지 말고. 로어가 말했다.

    너, 이 개 같은 녀— 녀석은 마우스피스 때문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시합이 막 시작되면서 로어는 얼마 만에 놈을 완전히 뭉개버릴 수 있을지 계산해봤다. 답이 나온 것 같다. 5분.

    설마 나한테 개 같다고 하는 건 아니지? 지금 네 발로 엎어져 있는 게 누굴까? 로어가 그의 주위를 돌며 말했다.

    녀석은 잔뜩 약이 올라서는 안간힘을 쓰며 다시 일어섰다. 로어는 비웃듯 눈을 굴렸다.

    아까처럼 하하호호 해보지 왜?

    길버트 할아버지가 봤다면 멍청한 놈들이랑 엮이지 말고 그냥 피하라고 말씀하셨겠지. 항상 할아버지는 싸움이 붙었다고 다 싸워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조금의 비난도 섞이지 않은 인자한 어투로 재빨리 로어를 타이르곤 했다. 그래, 그분은 지금의 상황을 싫어했을 것이다. 로어는 그 죄책감, 길 할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로웠다.

    당연히 다른 방법도 써봤다. 그런데 효과가 없었다. 무자비한 상실의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데는 한바탕 쌈박질만 한 게 없었다. 그리고 지금 로어가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길 할아버지의 죽음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공포가 로어의 살갗 밑을 긁어대고 있었다.

    8월, 이번 사냥 시즌은 바로 이 도시 차례였다.

    로어는 한때 자신이 속했던 어둠의 세계를 떠나 모든 것을 잊고 양지바른 곳, 새롭고 더 나은 세계로 들어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새 출발을 하려고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로어의 가슴 한구석에선 아직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날짜가 찬찬히 카운트다운되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그 무언가에 대비라도 하듯 로어의 몸은 바짝 긴장되었고 본능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졌다.

    2주 전부터 도시 여기저기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늘 밤을 위해 마지막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발견했을 때 로어가 받은 충격은 칼날에 폐부를 찔린 것처럼 숨이 멎을 정도였다. 그들이 눈에 띌 때마다 로어가 소망했던 모든 것이, 마음속으로 간절히 애원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게 더욱 분명해졌다. 제발. 지난 몇 달 동안 그렇게 빌고 또 빌었는데. 제발 이번엔 런던이 되라고. 제발 도쿄가 뽑히라고.

    제발 아무 데라도 좋으니 뉴욕만은 아니길 바랐다.

    사냥 첫날엔 특히 광란의 살육이 극도로 치닫는다. 오늘 밤만은 싸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것을 로어도 알고 있었다. 단 한 명의 헌터에게라도 걸렸다간 모든 가문이 달려들어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신들만 잡아 족치는 게 아니라 로어의 살가죽까지 벗기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게 뻔했다.

    로어의 시야 한쪽 끝에 프랭키가 그 우스꽝스러운 회중시계를 확인하며 ‘마무리 신호’를 주는 게 보였다. 로어가 보기에 프랭키의 얼굴엔 돈 셀 생각, 어디 갈 생각뿐이었다.

    계속 질질 끌 거야? 로어가 상대 소년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녀석은 이제야 한꺼번에 취기가 올라오는 게 분명했다. 점점 더 커지는 관중들의 비웃음 소리에 더욱 화가 난 녀석은 어설프게 주먹을 휘두르며 로어를 쫓아 매트 위를 어슬렁거렸다.

    로어가 상대의 주먹을 피하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티셔츠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목걸이가 밖으로 휭 하고 모습을 드러냈고 목걸이에 매달린 금색 깃털 모양의 펜던트가 희미한 조명을 받아 반짝 빛났다. 남자아이가 휘두른 글러브가 펜던트를 때렸다. 가느다란 목걸이 줄이 소년의 글러브 어딘가에 걸렸는지 로어가 다시 움직이자 목걸이 이음새가 찰칵 끊어지면서 황금 깃털 펜던트는 어느새 로어의 발밑에 떨어져 있었다.

    이로 찍찍이를 풀고 글러브를 벗은 로어는 상대의 펀치를 피하며 몸을 숙여 재빨리 바닥에서 목걸이를 주워 들었다. 또 잃어버리지 않게 목걸이를 청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글러브를 끼는 로어의 몸은 새롭게 북받친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목걸이는 길 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다!

    로어는 몸을 돌려 소년을 마주 보며 저 자식을 죽이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녀석의 어여쁜 코 정도는 부러뜨려도 되겠지.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에 응답이라도 하듯, 로어는 그렇게 해줬다.

    욕지거리를 퍼붓는 소년의 얼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꼬맹이 왕자님, 꿈나라로 갈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요. 로어는 남자아이에게 말하며 프랭키가 경기 종료를 선언하지 않을까 그쪽을 슬쩍 돌아봤다. 사실은—"

    그때 로어는 시야 가장자리로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알아채고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눈 대신 옆통수로 아이의 주먹을 받았다. 눈앞이 깜깜해졌다가 순식간에 형형색색으로 깜빡거렸지만 로어는 용케 두 발로 버텼다.

    소년은 코에서 여전히 피를 쏟으면서도 두 팔을 공중으로 치켜들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더니 비틀거리며 로어를 향해 다가왔다. 로어가 무슨 일인지 알아차린 순간 그걸로 끝이었다.

    로어는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글러브를 앞으로 들어 올렸지만 소년이 쫓는 건 그게 아니었다. 소년은 팔로 로어의 목을 휘감더니 자기 입술로 로어의 입술을 짓눌렀다.

    순간 섬광이 터지듯 폭발한 공포가 로어의 살갗을 덮치며 온몸이 얼어붙었다. 정신이 잠깐 빠져나갔다가 다시 몸 안으로 들어올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관중들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광란의 환호성을 질러대는 가운데 소년은 로어에게 몸을 완전히 밀착하고는 자기 혓바닥으로 로어의 혀를 서투르게 더듬었다.

    로어의 내면에서 무언가 쩍 갈라지며 지난 몇 주 동안 가슴속에 쌓이기만 했던 무거운 응어리가 분노의 울부짖음과 함께 풀려났다. 그녀는 무릎을 치켜들어 소년의 사타구니를 힘껏 후려쳤다. 녀석은 마치 목 잘린 시체마냥 바닥으로 떨어지며 내내 까아악 비명을 질러댔다. 로어는 그런 그에게 곧바로 덤벼들었다.

    잠시 후 로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누군가 그녀를 남자애한테서 떼어놓고 있었다. 공중으로 몸이 들리는 중에도 로어는 여전히 고함을 치며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글러브는 온통 피범벅이었고 녀석은 그나마 남은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만해! 프랭키의 어깨 중 한 명인 빅 조지가 로어의 몸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괜히 힘 뺄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

    빠르게 날뛰는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로어는 숨을 고를 수조차 없었다. 빅 조지가 로어의 발을 땅에 내려놓는 동안에도 그녀의 몸은 계속 떨렸고, 마침내 로어가 괜찮다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빅 조지는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기 임무를 다하는 시늉이라도 하듯 빅 조지는 매트 위에서 신음하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발로 툭툭 찔렀다.

    로어의 귀에서 쿵쿵 울리던 소리가 사라지자 주변의 공간이 완전히 고요해진 것 같았다. 들리는 소리라곤 위층 주방에서 나는 칼질 소리와 달가닥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공포가 느릿느릿 로어의 몸을 훑고 지나가며 심장 주위를 옭아맸다. 로어는 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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