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함의 굴레
건축은 어떻게 시작하여 마무리되는 것일까. 설계의 시작은 대개의 경우 커다란 윤곽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지역의 맥락에 대한 해석과 건물의 형상과 땅에 앉히는 방식에서부터 점차 작은 스케일로 옮겨간다. 물론, 사소한 디테일로부터 작업의 실마리를 찾는 경우도 있으나, 흔하게 경험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다. 두꺼운 색연필의 모호한 선에서 시작하여, 일대일의 스케일로 줌-인할 수 있는 캐드 프로그램 속 디지털화된 선까지, 건축이란 결국 스케일의 변화를 능숙하게 감지하는 일이다. 도면으로 정리된 언어가 물리적으로 구체화되는 과정도 유사하다. 대지 위에 규준 틀을 띄워 뼈대가 들어설 위치를 결정하는 것으로부터, 골조를 세우고, 부위별로 공종을 진행하여, 종국에는 건물의 구성 요소들이 몇 밀리미터의 단위로 만나는 디테일을 정리하며 건물은 완결된다. 건축이 본질적으로 스케일의 변화를 다스리는 일이라는 점이 일을 고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건축가의 진정한 능력은 도시를 조감하며 지역의 변화를 가늠하는 매크로(macro)한 시점과 재료와 재료가 만나는 15mm의 조인트를 들여다보는 마이크로(micro)한 지점을 동시에 사고하고, 서로 다른 차원 간의 영향 관계를 예측하는 데 있다.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 사이에 좁은 다리를 놓고 종횡무진 횡단해야 하는 자가 건축가다.
정교함은 건축가의 유니콘이다. 상세하게 재료와 구조체의 만남을 묘사할 수 있는 도면의 세계와는 달리, 구축의 현장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도면의 세계와 시공 현장이라는 거대한 차원의 이동이 자리한다. 창조 의지의 주체로서 건축가와 제작자로서 시공자가 분리되어 있는 구조는 건축 과정을 통제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 개입하는 무수히 많은 관계자들(시공, 금융, 클라이언트, 허가권자, 컨설턴트 등)에 의해 작업의 순수성은 쉽게 훼손될 수 있는 취약한 대상이다. 건축과 도시 환경은 건축가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공사의 손을 빌려 만들어지고 사용자에 의해 변모되어간다. 이때 작가로서 건축가는 (안타깝지만) 구상과 제작이 분리된 절름발이로서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술과 자본이 응집된 시대의 최전선, 곧 하이엔드 건축에서만 발현되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동력 삼아 작업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긴 생애주기를 가진 건물에 대한 건축가의 느슨한 통제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A Bridle on Precision
How does architecture start and end? The beginning of a design usually starts with a broad outlin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