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작품이라는 역사적 무게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옛것과 새것의 적절한 관계를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주곤 했다. 렌조 피아노는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숨었고(롱샹성당 방문자센터 및 수도원), 과스미 시겔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그저 남남인 척했으며(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증축), 렘 콜하스는 미스 반 데어 로에를 집어삼켰다(일리노이 공과대학교 맥코믹트리뷴 캠퍼스센터). 주한 프랑스대사관(이하 프랑스대사관) 신축 및 리노베이션(2015~2023) 역시 상당한 부담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다. 전통건축의 속성을 근대건축의 형식에 담아내고자 한 우리 건축계의 출발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를 통해, 프랑스대사관(1959~1962)은 거장 김중업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건축의 최고 걸작으로도 종종 꼽히기 때문이다. 전통 기와지붕을 유려한 노출콘크리트 곡면으로 추상화한 지붕 형태가 가장 유명하지만, 프로그램을 직원업무동, 대사집무동, 대사관저 등 세 건물로 나누어 극적인 시간적 체험을 의도한 배치 역시 전통건축의 채 나눔과 상통했다. 그 외에도 전통 석물과 수종을 활용한 조경, 전통문양에서 추출한 장식, 대청마루와 유사한 공간, 바닥과 처마의 반사를 활용한 빛 환경 등 실로 다방면에 걸쳐 전통적 속성을 구현한 역작이었다. 다만 지난 세월 동안 많은 변형이 가해졌다. 대사집무동의 특징적인 지붕은 1970년대 중반에 보다 평평한 계단식 지붕으로 대체됐으며, 이를 지지하던 네 개 기둥이 네 배로 증식되고 필로티가 실내 공간으로 채워지면서 구조적 긴장감이 사라져버렸다. 직원업무동도 부분 철거와 증축으로 이리저리 꺾인 바닥판만이 흔적기관처럼 남아 있었기에, 큰 틀에서나마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사관저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더 이상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작품을 최고로 꼽아온 셈인데, 사실 일반의 출입이 불가했던 시설이기에 오랫동안 사진과 기억에 의존해 판단해온 터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프랑스대사관은 현재와의 접점이 없는 걸작이었다. 2015년 프랑스 정부가 발주한 지명설계공모는 네 배 확장된 프로그램을 수용하면서, 그간의 임기응변식 대응이 아닌 종합적 시각으로 김중업의 건축을 업데이트할 것을 요구했다.
건축 대 보존
기존 시설 중 존치 대상이 지정되고 가용 부지가 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설계공모에 초대된 건축가들의 제안은 무척 다양했다. 다수는 김중업과 차별화된 독자적인 표현의지를 갖고 기존의 조직에 적극적으로 변화를 주고자 했다. “보존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라는 콜하스의 입장을 해석하면서 호르헤 오테로파일로스는 건축 행위를 ‘건축(architecture)'과 ‘보존(preservation)'으로 구분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건축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작업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형태의 독창성은 취향의 변화를 항시 조장하는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라 한시적이기 때문에 더 이상 건축의 문화적 가치를 지속성 있게 확보해줄 수 없다. 강렬한 형태의 힘은 소위 스타 건축가들의 활동에서 정점을 찍고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기한이 만료됐다면, 이제 건축은 보존을 통한 해석과 재해석으로 그 가치를 지속할 수 있게 됐다. 기존 건축과 환경을 부각시키고 그 의미를 현재화시키는 문화적 연결고리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보존은 마치 “조각에 주목하게 하는 받침대”와 같이 자신의 형태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보존은 새로운 형태를 창작의 본질로 여기는 건축과는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다. 대부분의 건축 프로젝트에는 해석하고 대응할 도시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그 현대적 기능과 가치를 확장시키는 신축 영역을 낮은 자세로 더하는 것이었다. 대사집무동에 어떠한 현대적 재해석을 가하지 않은 점에서도 당선안은 유별했다. 옛것과 새것은 서로 뒤섞이지 않고 뚜렷한 병치를 이루도록 했는데, 각자가 고유의 성질을 유지하며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몽타주의 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