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와 건축가, 큐레이터와 작가가 긴 시간을 두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함께 좋은 일을 도모할 때가 있다. 나는 이런 관계를 ‘인연'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연(카르마)'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불교 용어다. ‘인(因)'은 어떤 결과의 직접적 원인을 뜻하고 ‘연(緣)'은 외적인 환경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무의 발원인 씨앗을 ‘인'이라고 한다면, 씨앗과 나무의 성장을 좌우하는 햇빛, 공기, 토양은 ‘연'이다. 씨앗과 나무의 ‘인'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그들의 환경 ‘연'은 변한다. ‘인'이 결정된 것이라면 ‘연'은 열려 있는 불확실의 영역이다. 그래서 인연은 언제나 변화를 전제로 한다.
조남호와의 인연은 건축의 재료와 구법으로 시작됐다. 건축가로서 그의 꾸준한 작업과 다른 한편 비평가와 기획자로서 생겨난 나의 관심에서 비롯됐다. 조남호의 일관된 태도와 작업 이력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그의 건축에 대해 내가 처음 쓴 글은 2009년 봄 「중앙선데이」 연재에 게재된 짧은 원고였다. 당시 대표작인 교원그룹 도고 게스트하우스(2000, 이하 교원게스트하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여러 겹의 공간이다. 가까운 경치와 먼 경치가 어우러져 있고, 넓은 지붕면의 막힘과 투명한 라운지의 유리 공간이 어우러져 있는 깊은 공간이다. 라운지로 들어간다. 집 밖에서 보았던 넓은 지붕이 집 안에서는 높고, 경사진 나무 천장으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로비에는 다섯 개의 기둥이 가로지르고 있다. 각각의 기둥에서 나무가지가 네 개씩 뻗어나가 넓은 지붕면의 보와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부재가 가늘고 재료가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거추장스럽지 않다. 이 구조재를 글루램(glulam)이라고 부른다. 나무 각재를 여러 겹 접착하여 만든 가공 목재로 구조적인 성능이 뛰어나고 화재에도 잘 견딘다. 목재 단면의 치수를 2인치 단위로 하기 때문에 2×4, 2×6 등 표준화된 서구식 공업 목재다. 길고 가는 부재로 쓸 수 있고 넓고 얇은 판으로 쓸 수 있다. 공간을 감싸주기도 열어주기도 하는 목재의 속성을 이용하여 건축가는 깊고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러 겹의 공간’, ‘깊고 투명한 공간’. 필자는 근대적인 텍토닉의 관점에서 교원게스트하우스 공간의 특성과 구법 간의 관계에 대해 서술했다. 이런 관심은 조남호와 함께 했던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졌다. 2015년 필자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건축 컬렉션과 개관 프로그램의 기획자로 일할 때였다. 1:1 실물 건축 부재를 모으는 소장품 기획과 건축 요소를 디자인, 제작, 소장하는 ‘건축생산워크숍'을 발상했다. 건축생산워크숍의 첫 번째 주제를 목재로 선정하고 조남호와 구마 겐고를 초대했다. 당시 조남호의 주제는 ‘가벼움과 무거움'이었다. 가벼운 표준 각재가 전통 가구식 목구조의 보와 기둥의 기능과 감성을 가질 수 있는가? 조남호는 이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구축적 공간체'(2015)라고 불렀다. 60×60mm 각재를 기본으로 이를 네 개씩 모아 기둥과 보로 조합하는 우레탄 커넥터를 개발했다. 각재를 접착시켜 무거운 구조부재를 만드는 기성 방식을 넘어 각재 요소의 비례와 가벼움이 살아있는 구축체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