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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라는 타자 NATURE AS OTHERNESS

인간은 여느 생물과 같이 먹고, 자고, 죽는 이상 자연의 일부다. 그러나 자연을 사유하는 인간의 정신은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사유는 사유하는 주체와 사유되는 대상을 구분해야 성립하는데, 이때 주체는 대상 안에 있지 않고 그 밖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연은 정신의 부정이며 외부가 된다. 반대로 정신은 자연의 타자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건물은 돌과 철로 이뤄진 이상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나 건축은 돌무더기나 철 덩어리와 같지 않다. 건축은 정신이 스스로를 자연과 분리하여 구현한 이념의 형식이다. 그래서 건축은 자연 밖에 존재할 때만 성립한다. 자연은 건축의 타자이며, 건축 역시 자연의 타자일 수밖에 없다. ‘자연적 건축’, ‘자연과 일치하는 건축’이라는 말 자체도 건축과 자연이 다름을 전제로 한다. 서로에 대해 타자인 건축과 자연이 마주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관계는 타자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실상 건축과 자연의 관계란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대립이다. 모든 건축과 자연의 관계는 오직 대립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성문안 CC 클럽하우스는 애써 자연을 모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형태는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각형이다. 수직 높이에 비해 압도적으로 긴 수평 길이로 인해 건물은 매스보다 판에 가깝다. 기하학적 판은 울퉁불퉁한 지형과 그 위를 덮은 숲과 대조된다. 건축과 자연의 관계 맺기는 수직적 자리 잡기에서 시작된다. 판이 수직적 영점인 지면과 높이가 같다면 공간이 사라지고 시간만을 지배하는 평면이 된다. 판이 지면보다 높게 자리를 잡는다면 자연을 압도하려는 남근적 신전이 된다. 반대로 판이 지면보다 낮다면 자연에 함몰되는 죽음 충동이 지배하는 성소가 된다. 이 클럽하우스의 건축적 판은 땅 전체를 들어 올린 듯 자리한다. 지면보다 높되, 마주한 언덕보다는 낮아 자연을 압도하지도 그렇다고 지배당하지도 않는 안정된 긴장감을 준다. 건축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다음 방식은 수평적 자리 잡기이다. 건물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기에서 산으로 둘러싸인 사실은 특별하지 않다. 눈을 감고 이 동네 어디에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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