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 미술에서 모방의 문제는 모든 근심의 근원이었다. 한국 미술의 역사가 서구 미술운동에 시차를 둔 반복일 뿐 자체의 뿌리를 갖는 자율적 전개가 아니라는 생각은 한국 미술 자체에 대한 비판과 우려, 자조와 체념으로 이어지곤 했다. 서구 미술의 담론, 제도, 테크놀로지의 도입을 통해 본격화되었기에 비롯된 한국 미술의 식민적 상황은 의지로 타개할 수 없는 구조적이고 항상적인 것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이제야 이 땅의 미술을 제약 없이 펼쳐낼 수 있으라 기대했지만, 서구 미술에 종속되고 의존하는 상황은 더 큰 좌절로 다가왔다. 일제강점기를 보내며 전통은 단절되고 근대는 오염됐기에 받아낼 만한 선례는 보이지 않았고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영도(零度)’에서부터 서구의 선례를 학습하고 추격하여 한국 미술의 체질을 개선하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다. 이처럼 현대미술의 후발주자에게 모방은 배척되거나 폄하될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모방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이 땅에 맞는 것을 모방하는 일, 그래서 처음은 모방일지라도 외래의 것을 착근시켜 열매를 맺고 그 씨앗을 통해 이곳의 미술에 초석을 세우는 일이었다. 모방은 이렇게 이 땅의 조건, 현실, 기질, 그 무엇이든 근거 혹은 동기를 갖춘 것이어야 했다. 자의적으로 선택되거나 위로부터 부과된 것이 아닌 필연적 연결이 있는 모방. 이렇게 한국 미술에서 모방의 상대항은 ‘창조’라기보다 ‘필연’이었다. 「SPACE(공간)」 84호(1974년 4월호)에 실린 미술평론가 박용숙의 ‘왜, 관념예술인가?’는 이 고질적인 문제를 다시 꺼내든다. 전쟁 이후 한국 미술의 장에 등장한 여러 사조에 대해 그는 “우리가 관념예술의 양식을 그대로 도입한다고 할 때 그 필연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1 여기서 ‘관념예술’이란 당시 구미에서 유행 중인 개념미술이 아닌 20세기 초 유럽의 표현주의, 다다, 초현실주의로 그 기원이 올라가는 광의의 현대미술이다. 이들은 단순히 새로운 시각 형식을 창안한 것이 아니라 서구 문명의 위기를 다뤄낸 일종의 “정신적 모험”이기에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다. 그 위기란 다름 아닌 과학기술의 발달, 자본주의의 고도화, 합리주의의 심화로 인해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질식시키는 사태이다.
리-비지트 「SPACE」 24
「SPACE(공간)」는 56년 동안 한국 건축의 현장을 기록한 대표적인 매체다. 켜켜이 쌓인 기사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건축사가 김현섭, 비평가 박정현, 건축가 서재원, 건축사와 미술사를 아우르는 조현정, 미술사가 신정훈 다섯 사람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이 발굴해낸 이야기가 오늘의 건축 담론을 위한 생산적인 탐험이 되길 기대한다.
RE-VISIT SPACE 24
has documented the Korean architectural scene over the past 56 years. To shine a new light on its huge collection of past articles, the architecture historian Hyon-Sob Kim, critic Park Junghyun, architect Suh Jaewon, architecture and art historian Cho Hyunjung, and art historian Shin Chunghoon were invited to conduct a discussion about SPACE'S impressive legacy. 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