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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수진에 스아이건축사사무소 대표 × 김정은 편집장, 박지윤 기자

풍경

SPACE: 하늘집(2011)을 시작으로 동굴집(2022)까지 판교에 총 열 채의 주택을 작업했으며, 빅-마마(2017) 이후 6년 만에 판교에 돌아왔다. 판교 거리에서 그간 주택의 변화가 감지되던가?

정수진(정): 동굴집을 작업하러 판교에 가니, 하늘집에서 선보였던 중정형 주택과 노란돌집(2012)의 외부 마감재인 긴 돌을 사용한 주택의 수가 늘었다는 게 체감됐다.

SPACE: 하늘집, 노란돌집, 빅-마마와 같은 판교 주택 작업들은 외부는 닫고 내부는 열린 중정 형태로, 당시 판교에 새로운 주택 유형을 제시했다. 중정형으로 설계한 데에는 판교라는 환경에 대한 해석이 있었을 것이다

정: 판교에는 기본적으로 담장 설치를 금지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수목으로 된 1.2m 높이의 낮은 담장만 가능하다. 판교 거리의 풍경이 마당으로 쭉 연결된, 미국의 주택단지와 같은 모습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지침은 판교의 환경과 맞지 않다. 마당으로 연결된 미국 주택단지의 경우 대지가 넓어 충분한 면적의 마당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완충 역할을 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수 있다. 작은 뒷마당을 가질 수도 있는 너비다. 반면, 판교는 70평 남짓의 대지로 구획되어 앞마당을 열면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어렵다. 친하게 지내는 것과 살을 부대끼며 사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내부에 마당을 둔, 중정형 주택으로 계획했다. 중정은 외부에 닫힌 마당이라 프라이버시가 확보된다. 기본적으로는 내부 공간들이 서로 마주 보며 중앙의 마당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빛, 조망, 시각적 풍요로움과 같은 요소를 해결한다. 중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은 하늘이 된다. 외부로 창을 내는 것은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빛 혹은 자연의 조망과 같은 특별한 요소 때문이다.

SPACE: 오랜만에 판교에 작업한 동굴집에서는 프라이버시와 시야 확보에 관한 생각을 어떻게 풀어갔나?

정: 건축적 어휘가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다. 궁극적으로는 여전히 중정형이고 내향적이다. 다만 판교와 같은 주택단지의 대지들은 장방형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동굴집의 땅은 말발굽 모양으로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땅의 모양에서부터 디자인을 시작했다. 먼저 땅으로부터 온 매스를 받아들이고 그 이후, 매스 안에서 마당과 공간들을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했다.

SPACE: 상가 주택인 윤슬하다(2021)는 도심지인 성수동에 위치해 있다. 이 작업 속 주택에서는 내부에 어떤 풍경을 들여왔나?

정: 마당을 꼭 만들어 달라는 건축주의 요청이 있었다. 크지 않은 면적에 마당을 담으니 거실이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최대한 넓어 보이도록 마당과 거실, 식당을 통으로 구성했고, 상황에 따라 각 공간을 구분할 수 있는 한지문을 두었다. 주택은 4층부터 시작되는데 층수가 높아질수록 원경을 볼 수 있기에 실마다 조그만 테라스를 계획했다. 도로에 바로 면한 창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선 창인데, 풍경을 조금 더 관조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마당에서는 거실, 식당과 같은 내부 공간이 보이고, 각 실에서는 앞집 건물도 보이고, 멀리 서울숲과 지하철역도 보인다. 마당에서는 내부 풍경, 개인 공간에서는 외부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주택에서 쓰이는 풍경 문법과는 반대인 셈이다.

SPACE: ‘자연’(2018)은 순천의 주택단지 끝단에 위치해 있고, 한 면이 자연을 향해 열려 있다. 도심형 주택과는 다른 대지 조건이기에 ‘자연’과 다른 작업들을 비교해보면, 그 사이에서 정수진의 건축 어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자연’은 내부가 아닌 외부의 풍경을 적극적으로 들여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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