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보화각의 건축가가 박길룡이 아니라면? ‐ 「SPACE」라는 물증, 혹은 미스터리 WHAT IF PARK KILYONG WAS NOT THE ARCHITECT OF BOHWAGAK? – SPACE AS THE EVIDENCE OR MYSTERY

보화각은 간송미술관 경내에 자리한 건축물로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하여 1938년 완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김현섭(고려대학교 교수)은 이번 리포트를 통해 이 보화각의 설계자가 박길룡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Bohwagak, located within the precinct of Kansong Art Museum, is known to have been designed by Park Kilyong and was completed in 1938. In this report, HyonSob Kim (professor, Korea University) raises intriguing questions over the origins of this site and suggests that Park Kilyong may not be the architect of Bohwagak.

1. 보화각의 건축가가 박길룡이 아니라면? 최근 필자에게 든 생각이다. 한국 건축계와 소유주인 간송미술관이 다 그렇게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어디 감히 이런 발칙한 의문을 품다니…. 게다가 2019년 보화각(1938)이 국가등록문화재(768호)로 등록된 데는 한국 1세대 건축가의 대표자인 박길룡(1898~1943)이 설계자라는 점도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당시 문화재 등록을 심의한 문화재위원회 회의록(2019.12.17.)을 보라.▼1 2022년 4~6월에 개최된 전시 <보화수보(寶華修補):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도 대중에게 이를 각인하는 계기였다. 사실 필자도 박길룡 작품으로서의 보화각을 주시해왔고, 근래에는 박길룡의 기능주의적 개념에 견준 보화각의 전환기적 성격을 주제로 논고를 준비하던 차였다.▼2 그런데 기본 사실 관계를 검토하는 가운데 의문이랄까, 상상이랄까, 뭐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발단은 「SPACE(공간)」 6호(1967년 4월호)에 게재된 특집 ‘건축가 박길룡: 24주기를 맞이하여’에 대한 재고찰이었다. 이는 「SPACE」가 2021~2022년 24회 연재한 꼭지 ‘리-비지트 「SPACE」’의 18회차(2022년 6월호) 주제였으니, 1960년대의 박길룡 인식에 대한 필자의 현재 논평을 위해서는 해당 ‘리-비지트’ 기사를 참고하시라.▼3 건축가 박길룡을 연구하기 위한 해방 후의 원천 자료로서 이 특집 기사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데, 보화각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필자가 아는 한, 「SPACE」 6호야말로 보화각을 박길룡의

작품으로 간주한 최초의 출판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특집을 꼼꼼히 살펴보면 보화각과 관련해 두 가지 의문이 생기며, 각각은 또 다른 의문점을 자아낸다. 첫째, 특집의 총론 격인 윤일주의 글이든, 박길룡과의 기억을 회고한 10인의 추상록(追想錄)이든, 어디에도 보화각은 언급되지 않았다. 박길룡이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추도기를 냈던 (그리고 「SPACE」 6호에 적극 참조됐던)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1943년 5월호)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왜일까? 둘째, 이 특집에 글과는 거의 무관하게 삽입된 열 장의 박길룡 건물 사진 중 ‘북단장(北壇莊)’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둘인데, 하나가 보화각이다. 나머지 하나는 간송 전형필(1906~1962)이 1930년대 전반 인근의 터와 함께 구입했던 2층 양관이다. 매도자인 프랑스인 폴 플레장의 주택이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이는 보화각으로 오인되어 잘못 삽입된 것일까, 아니면 여기에도 박길룡의 손길이 묻어 있는 것일까?

주지하듯 간송은 문화재 수집을 본격화하며 1934년 즈음 지금의 성북동 간송미술관 일대의 터를 매입했고,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옛 선잠단 부근이라 하여 ‘북단장’이라 명명했다.▼4 북단장은 건물을 포함한 터 전체의 영역을 지칭한다고 하겠으니, 보화각은 북단장 경내에 지어진 건물이다. 한편, 혼동을 피하기 위해 옛 플레장 주택을 여기서는 편의상 ‘플레장 양관’이라 부르자. 이에 대해서는 이흥우(1996)의 문장을 인용할 만하다. “[플레장이 지은] 빨간 지붕의 그 양옥은 건평 70평 정도로 거듭 수리를 해 지금도 남아 있으며 1966년에 설립된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초기의

사무실이었고 지금은 도서실로 사용된다.”▼5

2. 「SPACE」 6호 박길룡 특집에서 보화각과 관련해 필자 스스로 제기한 의문은 이해하려고만 한다면야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첫째, 추상록을 쓴 필진들이 (두 아들만 빼면 대부분 박길룡건축사무소를 거쳐 간 인물이긴 하지만) 굳이 보화각을 언급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보화각이 일제의 문화침탈에 맞섰던 간송의 야심찬 프로젝트였음을 생각하면 이 건축공사는 일부러 조용히 진행됐을 수도 있는 일이다. 건축가를 익명으로 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회자되는 것을 자제하면서 말이다. 당시는 중일전쟁 중인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으로 전시통제를 강화하던 때였다. 둘째는 더 간단한 문제다. 앞서 시사했듯 플레장 양관 사진은 편집자의 실수로 들어갔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을 너무 쉽게 억누르지는 말아보자. 보화각 정도의 프로젝트를 박길룡이 맡았다면 우리 건축인들이 전혀 몰랐을 리 만무하다. 만약 알았다면 해방 후의 회고에서는 한 번쯤 자유롭게 거론됐을 법하지 않은가? 더 진한 의구심은 윤일주에게서 온다. 특집의 총론을 쓸 당시는 박길룡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그였지만, 해당 특집에 보화각 사진이 삽입된 이상 그가 이를 주목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1978년 출판한 『한국현대미술사(건축)』의 박길룡 작품 목록에 보화각은 빠져 있다. 이 책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에 그가 공을 들인 것을

생각하면 뜻밖의 일이라 하지 아닐 수 없다. 한국 근대건축사 분야를 선구적으로 개척한 건축사학자 윤일주에게 보화각이 박길룡의 작품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선친의 입장을 이어받아서인지 윤인석이 「건축사」에 기고한 글 ‘한국의 건축가: 박길룡 (1)~(2)’(1996.7.~8.)에도 보화각은 거론되지 않았다. 더욱이 김정동이 1980년대 말 같은 회보에 15회 연재했던 ‘한국 근대건축의 재조명’(1987.5.~1989.2.)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시리즈에서 한옥에 둥지를 튼 미국공사관(1883)에서부터

You’re reading a preview, subscribe to read more.

More from Space

Space13 min read
서울의 땅과 물, 이야기를 잃지 않으려면: 백운동천 물길공원 계획안 Preserving the Land, Water, and Stories of Seoul: The Baegundongcheon WaterWay Park Masterplan
서울 한복판, 경복궁을 뒤로하고 조금만 길을 오르면 창의문 기슭에서 흘러내려오는 백운동천과 대한제국 시절의 독립운동가 집터가 있다. 비록 물길은 도로 밑에 묻혔고 집은 그 터만 남아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곳 생태와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 서울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2월, 「SPACE(공간)」 편집부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허서구(허서구건축사사무소 대표)를 만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백운동천 일대는 현
Space3 min read
호숫가의 집 A House by a Lake
은퇴와 함께 시골로 이사 가는 부부를 위한 집이다. 우리는 이 집이 새로운 삶으로의 정착을 도와주는 길잡이, 같이 지내면 기분 좋은 친구 같은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교적 큰 땅을 사게 되었으나, 부부는 힘닿는 데까지만 밭을 가꿀 것이라고 했다. 두 분이 이 삶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통제된 실내 공간과 그렇지 않은 자연 사이에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중간적인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흙 묻은 신발을 벗어두거나, 햇볕에 무언가
Space12 min read
대답, 대화, 화답 Answer, Conversation, Response
“건축에서 일관성은 추구해야 할 가치인가. 자연 재료의 빛깔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페인트로 색을 만드는 것보다 고결한 일인가. 완전함은 좋은가. 불완전함은 좋은가.치우침은 경계해야 할 대상인가. 균형은 경계해야 할 대상인가.” (건축사사무소 김남, 2021 젊은건축가상 지원 에세이 중에서) ‘Is consistency a value to be pursued in architecture?Are the colours of natural mater

Rel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