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나누기 게임, 김원의 봉원동 K씨댁 THE DIVIDING GAME: KIM WON’S BONGWON-DONG, RESIDENCE FOR MR. K

학생들의 교련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실미도 탈출 사건, 유신으로 가는 길목이 될 줄 몰랐던 국가 비상사태 선포와 대연각 호텔 화재 등 대한민국 근대사의 가장 역동적 시기였던 1971년. 그해에 설계된 봉원동 K씨댁은 혼란스럽고 격동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와는 사뭇 동떨어진 듯 도도한 모습으로 지금의 금화터널 초입에 태연하게 앉아 있다.▼1 당시 대부분의 단독주택들이 벽돌로 축조되어 라이트풍의 무거운 모습을 띠는 것과는 달리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재료인 본타일로 뽀얗게 뒤덮인 바람에, 집은 석고 덩어리를 빚어놓은 큐비즘 조각 같은 모습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 블록으로 쌓아 올린 것처럼 키가 다른 정방형 큐브 세 덩어리는 두꺼운 연필로 그린 듯한 둔탁한 눈썹차양이 드리우는 깊은 그림자로 인해 리카르도 보필의 볼드한 입면이 어렴풋이 연상되기도 하고, 북동쪽의 반 갈라놓은 기와지붕은 어딘가 모르게 귀여우면서도 친근하다. 마치 지중해 저 멀리 있을 법한 천진난만한 이 집은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한 세 딸을 둔 건축주의 의뢰로 탄생한다. 유일한 요구 조건은 세 딸이 꼴 보기 싫을 때 피할 수 있게 방을 배치해 달라는 것, 그 이외 모든 디자인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고 한다.▼2 서른이 채 안된 젊은 나이에 의뢰받은 이 집은 사실상 건축가의 데뷔작 중 하나로 건축가는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의 현전(presence)보다는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적 매니페스토(manifesto)를 제시하고 싶었던 듯 건축설계를 통해 일종의 게임을 감행한다.▼3

리-비지트 「SPACE」 23

「SPACE(공간)」는 56년 동안 한국 건축의 현장을 기록한 대표적인 매체다. 켜켜이 쌓인 기사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건축사가 김현섭, 비평가 박정현, 건축가 서재원, 건축사와 미술사를 아우르는 조현정, 미술사가 신정훈 다섯 사람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이 발굴해낸 이야기가 오늘의 건축 담론을 위한 생산적인 탐험이 되길 기대한다.

RE-VISIT SPACE 23

SPACE has documented the Korean architectural scene over the past 56 years. To shine a new light on its huge collection of past articles, the architecture historian Hyon-Sob Kim, critic Park Junghyun, architect Suh Jaewon, architecture and art historian Cho Hyunjung, and art historian Shin Chunghoon were invited to conduct a discussion about SPACE’S impressive legacy. We hope that the material shared at this meeting will present a productive new genealogy and direction to today's architectural debates.

서재원은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현재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층위의 모순적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강릉 호지 스테이, 망원 빌라, 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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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지식을 교환하며 전시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비영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를 정교하게 발전시키며 '새로워진 맥락(Renewed Contextual)', '추출 정책(Extraction Politics)', '무형의 구체들(Intangible Bodies)'이라는 서로 중첩되는 세 가지 가닥을 설정했다. 새로워진 맥락은 지역의 장소성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기반한 재활용 개념이다. 전통적인 재료와 지역의 폐기물을 현대 건축 생산 방식에 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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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가 지금의 공모 제도를 통해 얻은 것은 공공의 DNA라고 생각한다. (중략) 우리는 공공건축으로 건축 실무를 시작한다. 그래서 민간 작업을 하든, 공공 작업을 하든 그 안에 공공성이 내재돼 있다고 느낀다.” 지난해 11월호 특집, '설계공모, 10년의 경험'을 위해 마련된 좌담에서 조윤희(구보건축 대표)가 한 말이다(「SPACE(공간)」 672호 참고). 공공건축과 민간 건축을 막론하고 젊은 건축가들에게 공공성을 우선 고민하는 태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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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 & EDITOR 황용철 Hwang Yongcheol EDITOR-IN-CHIEF 김정은 Kim Jeoungeun (lalart@spacem.org) EDITOR 방유경 Bang Yukyung (thirdroom@spacem.org) 박지윤 Park Jiyoun (space1125@spacem.org) 윤예림 Youn Yaelim (yaelimyoun@spacem.org) 김지아 Kim Jia (lifestremin@spac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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