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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너머를 보는 사람들: 〈우먼 인 아키텍처〉 LOOKING AT THE OTHER SIDE OF HISTORY: 'WOMEN IN ARCHITECTURE'

건축의 역사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양한 성과 신념, 배경의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가담한 수많은 노력이 배제된 채, 마치 모든 난관을 홀로 헤치고 공을 세운 듯이 천재 건축가의 생애를 비추는 건축사에 의문을 던진다. 다양성, 배려, 협력은 〈우먼 인 아키텍처〉의 전시 책임자 그리고 전시 구성에 도움을 준 연구 팀 ‘우먼 인 대니시 아키텍처 1925~1975’(이하 우먼 인 대니시 아키텍처)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단어들이다. 건축의 역사와 그 서술 방식에 대해, 이들이 가진 생각을 들어보자.

There are people who claim that history is suffering from ‘amnesia’. They are individuals who question the story narrative in the history of architecture that - while highlighting the life of a genius architect as someone who supposedly overcame all challenges and accomplished everything by themselves - tends to dismiss the unmeasurable amount of contributions that people of various genders, beliefs, and backgrounds had put in to create a space for everyone. Diversity, consideration, and collaboration—these are words that are commonly emphasized by both the head curator of the exhibition ‘Women in Architecture’ and the collaborating archive team WOMEN IN DANISH ARCHITECTURE 1925 - 1975: A New History of Gender and Practice (hereinafter WOMEN IN DANISH ARCHITECTURE). Let us hear their thoughts on the history of architecture and its narrative method.

발굴하는 전시: 역사가 묻지 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다

윤예림(윤): 〈우먼 인 아키텍처〉는 건축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 건축가를 조명한다. 전시는 과거와 현재,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덴마크와 외국의 여성 건축가에 대해 시대와 세대, 장소를 아울러 다루고 있다. 폭넓은 내용으로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사라 하틀라(하틀라): 여성 건축가들이 이루어온 혁신과 그들이 이룬 건축적 업적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시는 이제껏 주목받지 못했던 흥미로운 프로젝트와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수많은 여성 건축가들이 시대, 세대, 국경을 넘어 남긴 유산들과 그 사이의 연결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더 나아가서는 전시가 역사적 서사를 다시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건축의 역사가 널리 알려진 위대한 소수 인물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여러 상호 관계와 협력 속에서 형성돼왔음을 말하고자 했다.

윤: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와 이야기들이 모습을 드러냈을지 궁금하다.

하틀라: 예를 들어, ‘더 아카이브’라는 섹션에서는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덴마크 여성 건축가들이 남긴 중요한 업적을 재발견해 소개한다. 1930년대 ‘여성을 위한 건물(Women’s Building)’의 건축 모금운동에 내놓아진 작은 은골무, 전후 덴마크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건물 칼데스코프할렌(1966~1972)의 파스텔톤 타일 조각 등을 통해 드러난 이야기들이다. 자료의 발자취를 되짚는 과정에서 우리는 덴마크 1세대 여성 건축가의 대범하고 근대적인 건물을 알게 되기도 하고, 1960년대에 활동하던 여성 건축가와 조경가의 협력이 낳은 디자인적, 기술적 도약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카이브 자료는 코펜하겐 대학교의 연구팀 우먼 인 대니시 아키텍처의 도움을 받아 구성했다. 이들은 덴마크 건축사에 언급되지 않고 잊힌 여성들의 기여에 관해 연구한다.

윤: 건축가 울라 태드럽이 제안한 부엌 평면을 실제 스케일로 재현한 공간이 인상 깊다. 도면이나 사진처럼 평면적인 아카이브 요소들을 3차원 공간에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들이 있었나?

하틀라: 덴마크 건축센터에서 핵심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전시디자인이다. 우리는 ‘평면적’인 전시를 지양하고 공간적 전시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늘 고심한다. 전시팀에는 큐레이터 이외에 건축가들도 함께한다. 서로 밀접하게 의사소통하며 콘텐츠를 공간적인 전시로 ‘번역’하고, 관람객들이 스스로 전시에 참여하고 빠져들도록 인도하는 것이 전시팀의 일이다. 이번 전시의 디자인은 아카이브라는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먼지 많고 딱딱한 전시가 되지 않길 바랐다. 건축가들은 이 개념을 발전시켜 가벼운 천으로 구획된 물리적 방들로 아카이브를 표현했다. 각 방은 각각의 여성 건축가를 보여주고 방마다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윤: ‘자기만의 방’ 섹션에서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1929)에 기반해 3인의 여성 건축가가 자신들만의 방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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