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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의 건 축 : 스 며 드 는 흐 름 과 회 전 하 는 균 형 The Architecture of Water: Permeating Flow and Spinning Balance

대지, 자연, 존재론적 건축, 현상학적 건축

이타미 준(유동룡)의 딸로 잘 알려진 유이화. 그는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는 건축가다. 유이화는 자연과 대지를 존중하고 그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두 건축가는 지역성, 토착성, 재료에서 느껴지는 온기, 생명력을 중시하고 자연과 지역에 스며들면서 “맛이 우러나오는” 건축을 추구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건축은 (하이데거의 대지의 개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지의 본성을 통해서 존재와 진리를 드러내고, 오감을 깨어나게 하는 존재론적이고 현상학적 건축이다.

돌과 덩어리, 물과 선

이타미 준의 건축은 하나의 묵직한 돌덩어리가 좌우대칭으로 동심원처럼 뻗어나가는 구성을 추구한다. 온양민속미술관(현 구정아트센터, 1982), 각인의 탑(1988), 수, 풍, 석 미술관(2006) 등 그의 초기 작품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투박하고 거친 덩어리가 이타미 준의 특성이라면, 유이화의 건축은 물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에는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면과 날카롭고 예리한 면이 공존한다. 유유히 흐르던 물은 회전하는 소용돌이가 되기도 하고 예리한 선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시호재(2023)의 평면은 공간을 감싸는 부드러운 흐름을 보이지만 지붕선은 예리하고 날카롭다. 합정동 이노이즈 사옥(2014, 「SPACE(공간)」 564호 참고)과 논현동 근린생활시설(2019)의 입면선 또한 흐르는 듯 날카롭다. 이타미 준이 둔탁한 덩어리 건축이라면, 유이화는 예리한 선의 건축을 구사한다. 유이화 건축에는 서로 다른 물의 흐름이 소용돌이치면서 균형을 이루는 태극 문양과도 같은 구성이 평면과 단면에서 나타난다. 시호재에서는 물이 소용돌이 치는 흐름의 배치를, 하늘의 소리에서는 대각선 배치를, 신원동 근린생활시설 & 단독주택(2021)에서는 태극 문양처럼 마주 보는 곡선을 볼 수 있다. 합정동 이노이즈 사옥에서는 단면에서 서로 두 개의 층과 볼륨이 맞물린 구성을 만든다. 이런 구성 방식은 회전하는 흐름, 점대칭, 동적인 균형 등 다양한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이타미 준이 정적인 중심성을 추구했다면 유이화는 동적인 균형을 추구한다고 할까. 동적인 특성을 갖는 유이화 건축에서는 이타미 준의 건축보다 시퀀스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이타미 준은 정면을 대면하면서 접근하는 방식을, 유이화는 벽과 길을 따라서 굽이치는 시퀀스를 통해서 건물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한다.

요소로부터 진동으로, 진동으로부터 흐름으로

이타미 준은 어머니의 집(1971)같이 요소가 많은 건축에서 시작해서 요소를 점점 줄여나가는 식으로 진화했고, 요소가 제거된 하나의 덩어리의 모습에서 종결됐다고 볼 수 있다. 이타미 준이 마지막에 도달한 한 덩어리 공간의 울림이나 진동으로부터 유이화는 진동을 흐름으로 변형시킨다. 유이화의 건축은 처음부터 요소들이 제거된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평면과 단면에서 흐름이 변형되면서 다양한 건축이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타미 준이 끝난 지점에서 유이화가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건물에서는 그 중간 지점을 볼 수 있다. 유이화가 2001년 뉴욕에서 귀국해서 2011년 이타미 준이 작고할 때까지 10년은 둘의 건축이 서로 섞이는 시기다. 오펠 골프 클럽하우스(2008)와 서원골프 클럽하우스(2012)에는 이타미 준의 중심성과 유이화의 흐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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